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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학교는 따뜻한 곳이어야 한다.
등록일 2020-11-12 10:08:14 조회수 335
내용

카운터팩츄얼 시뮬레이션(counterfactural simulation)이라는 것이 있다. 새로운 세계나 변화를 그려볼 때 실시하는 사고(思考) 실험을 말한다. 이 실험에서는 현존하지 않는 가상의 세계를 상정하고 실험을 한다.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코로나 상황은 지난해의 시점에서 본다면 카운터팩츄얼 시뮬레이션의 가상 세계다. 하지만 현재의 시점에서 보면 실험의 세계가 아닌 현실의 세계다. 사고 실험에서나 일어날듯한 일이 실제로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이 가상과 같은 실제 세계가 길어지면서 사람들의 마음은 답답함을 넘어 점점 차가워지고 있다. 코로나 탓으로만 돌릴 수 없는 그 어떤 지속적인 차가움이 모든 사람의 몸짓에서 날카롭게 묻어난다. 가수 나훈아의 “테스형, 세상이 왜 이렇게 힘들어”라는 넋두리가 “세상이 왜 이렇게 차가워”로 들린다. 그래서 이번 칼럼은 따뜻한 이야기를 쓰고 싶다. 마음만 먹으면 따뜻한 이야기는 많다.

 

우리 학교의 한 선생님께서 환갑을 맞이하셨다. 지난해에 우리 학교에 오셨으니, 이제 우리 학교가 교직 생활의 마지막 학교가 된다. 환갑을 맞이하여 선생님의 자리가 있는 작은 교무실에서 몇 선생님과 함께 조촐한 축하 파티를 하였다. 나와 교감 선생님도 축하의 자리에 함께 했다. 꽃다발을 전하고, 축하 노래를 함께 부르고, 케이크의 촛불도 껐다. 그리고 케이크를 나누어 먹으며 담소의 시간을 가졌다. 담소 중에 주인공인 선생님께서 ????년 ??중에서 처음으로 교직을 시작하여 이제 지금 우리 학교가 마지막 학교라고 말씀하셨다. 그 말을 듣고 있던 교감 선생님께서 깜짝 놀라셨다.

 

“선생님, ??중에서 근무하셨다고요? 저 당시에 그 학교의 학생이었어요”
“그래요? 저 그 때 ?학년 ?반의 담임이었는데….”
“맞네요, 선생님. 그때 선생님이 저희 반의 담임 선생님이었어요.”
“세상에나! 맞아요, 교감 선생님. 이름과 얼굴이 어렴풋이 기억날 것 같아요.”

 

참으로 믿기 어려운 만남이다. 첫 교직 생활에서 만난 제자가 마지막 근무 학교의 교감이 되어서 다시 만나다니! 제자가 잘 성장해서 32년 만에 교감 선생님으로 다시만나게 되니, 환갑의 선생님은 뜻밖의 깜짝 선물이라고 감동의 눈물을 훔치신다. 이런 만남의 모습을 어떤 언어로 실감나게 표현할 수 있을까? 잘 떠오르지 않는다. 다만 어떤 식으로 표현하든 차가움이 느껴지는 단어보다는 따뜻함으로 다가오는 단어가 자연스럽게 등장할 것 같다. 추상적으로 표현되는 ‘교육 현장’은 분석적이고 차갑게 그려질지 몰라도, 구체적으로 경험되는 ‘학교 현장’은 이렇게 인간적이고 따뜻한 에피소드들이 많다. 따뜻한 언어로 그려질 수 있는….

 

언제부터인가 교육에 대한 이야기는 차가운 언어가 주를 이루게 되었다. 종종 따뜻한 이야기도 등장하지만, 일회적이거나 특별한 미담으로 다루어지기 십상이다. 때론,교육에 대한 따뜻한 언어의 표출이 심각한 교육 문제에 대한 ‘눈 감아버리기’ 행태로 취급되기도 한다. ‘라떼는 말이야’의 비난을 감수하고서라도 말하자면, 내가 젊었을 때의 교직 생활을 되돌아보면, 그 어려움 속에서도 따뜻한 언어가 훨씬 많았다. 부정적인 언어도 타인에 대한 비난보다는, 어쩔 수 없는 한계를 지적하는 경우가 많았다.

 

교육 담론의 차가움은 코로나로 더욱 심해졌다. 방역 대책, 원격 수업, 학습 격차 등 코로나 시대에 새롭게 등장한 이슈는 전 국민을 교육 칼럼니스트로 만들었다. 정말로 많은 의견들이 다양한 언어로 표출되고 있다. 그런데, 대부분의 언어를 보면 교육 당국에 대한 ‘~해야 한다’는 요구의 형태이다. 그리고 각자의 입장에 따라 서로 다른 요구를 하고 있는데, 최종적인 요구의 종착점은 대부분 다음의 두 가지로 끝난다.

 

첫째, 교육의 본질이 무엇인가를 생각해보자.
둘째, 지엽적인 대책이 아닌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하자.

 

생각할수록 너무나 당연한 얘기지만, 이러한 주장과 요구들이 따뜻한 호소보다는 차가운 방백(傍白)으로 느껴지는 것은 왜일까? 이 지겨운 코로나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 교육의 본질 추구, 근본적인 대책을 요구하지만, 그게 단칼에 이루어질 수 없음을 알기에 그 허기가 찬 기운으로 나타나는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우리는 근본적인 대책이 될 수는 없지만, 그 허기를 조금이라도 채울 수 있는 좀 더 현실적이고 인간적인 전략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 굳이 이름 붙이자면 ‘따뜻한 언어의 전략’으로….

 

《언어의 온도》 (이기주 지음)에서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한 편의 글을 완성하는 일은 고치는 행위의 연속일 뿐이다. 문장을 작성하고 마침표를 찍는다고 해서 괜찮은 글이 자연 발생적으로 생겨날 리 없다. 좀 더 가치 있는 단어와 문장을 찾아낼 때까지 펜을 들고 있어야 한다. 그렇게 지루하고 평범한 일에 익숙해질 때, 반복과의 싸움을 견딜 때 글은 깊어지고 단단해진다.”

 

이번 코로나19의 양상을 보면 일시적인 사고(事故)라기보다는 정상 사고(normal accidents)에 가깝다. 즉 세상이 복잡하고 긴밀하게 연계되어 있기에 불가피하게 발생할 수밖에 없는 사고다. 특정한 지역에서 발생하는 일회적 사고가 아니라 언제 어디서든 지속적으로 반복될 수 있는 사고의 연속, 정상적인 형태의 사고인 것이다. 그래서 그 해결책도 근본적인 치유를 목표로 하지만, 실질적으로 코로나와의 결별보다는 어쩔 수 없는 동행의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 한 편의 글을 완성하는 것이 고치는 행위의 연속이고 반복과의 싸움인 것처럼, 코로나와의 싸움도 이와 마찬가지 방식으로 접근해야 한다.

 

이 고된 코로나와의 싸움에서 ‘따뜻한 언어의 전략’을 사용해보자. ‘세상’도 차갑고, 소위 추상적으로 논의되는 ‘교육’도 차갑다. 하지만 ‘학교’는 따뜻해야 한다. 따뜻한 언어로 표현되는 무대가 되어야 한다. 교감 선생님이 되어버린 제자를 만난 얘기처럼, 따뜻한 언어로 표현되는 다양한 장면이 학교에서 연출되어야 한다. 학교는 따뜻한 스토리가 이어지는 소극장이어야 한다.


<출처> https://21erick.org/column/5391/  송재범, 서울신서고등학교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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