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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학습이라는 뜨거운 감자
등록일 2020-11-20 11:05:09 조회수 14304
내용

1. 해야 해요! 아니 왜 꼭 해야 해요?

 

지역아동센터에는 다양한 문제로 인해 학습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학생들이 많다. 대한민국과 같은 경쟁적인 교육 현실에서는 소수의 능숙한 아이들을 제외하고는, 다른 대부분의 아이들은 학습에 대해 긴장된 태도를 가질 수밖에 없을 것이므로 학습 문제가 지역아동센터에서도 초미의 관심사인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지역아동센터 교사들 역시도 학습 문제를 어찌해야 할지 뚜렷한 입장을 정하지 못해 힘들어 하는 경우가 없지 않다. 학습문제와 관련해서 지역아동센터들 간의 입장 차이도 매우 다르지만, 센터 내에서 함께 일하는 종사자들 간에도 입장이나 의견 차이가 선명하게 달라 작은 갈등을 유발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지역아동센터들 중에는 ‘우리는 학습을 시키진 않습니다. 혹시 그런 사교육이 필요하시다면 학원을 가셔야 합니다.’라면서 방과 후에는 아동들이 교과 위주의 활동에서 벗어나 다른 많은 것들을 경험할 필요가 있음을 분명히 하는 센터가 있으며, 파랑새 역시 크게 보면 이런 입장을 지지하는 편이다. 그러나 특히 청소년들이 이용하는 센터들 중에서는 현실적인 문제나 아이들의 학교에서의 적응과 성공이 다른 발달적 성공을 이끈다는 것에 관심을 갖고, 교과 위주의 학습을 보충하거나 자기 주도적인 학습을 할 수 있도록 하는데 매우 많은 공을 들이는 센터들이 있다. 그리고 이러한 입장은 바쁜 일상을 보내고 있어서 아이들을 살뜰히 챙기는데 어려움을 느끼고 있는 보호자들의 광범위한 지지를 받는 경우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이렇게 ‘친 학습’과 ‘반 학습’의 정반대의 입장이 지역아동센터 안에서 입장 정리가 되지 못한 채 공존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입장의 차이는 센터들 사이에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앞서 말했 듯 센터 내부에서도 가치관이나 삶의 철학이 서로 조금씩은 달라서 사람마다 그 정도를 달리해서 나타나기도 한다. 학습을 하지 말자는 교사는 ‘학습은 학교에서 해야 하는 일인데, 왜 아이들이 힘들게 학교에서 공부를 하고 와서 센터에서 또 공부를 해야 하는가?’라는 입장에서 아이들이 원치 않으면 공부를 시키지 말자고 주장한다.

 

그러나 반대편에 선 교사들은 학교에서 해야 하는 것은 알지만, 학교를 다니는데 한글도 제대로 모르거나 기초적인 수학 문제도 풀 수 없는 아이들을 그냥 두고 보아야 하느냐고 항변한다. 특히 부모님들이 늦게 집에 들어오시는 경우도 많아서 아이들을 돌봐주실 수도 없을 터인데, 우리라도 아이들에게 신경을 쓰지 않으면 이 아이들이 나중에 너무 곤란하고 힘들어지지 않겠냐고 우려를 표명한다.

 

두 입장이 서로 틀린 소리를 하는 것은 아니어서 그러면 중간에서 하고 싶은 아이나 꼭 학습이 필요할 것 같은 아이들만 할 수 있도록 서로 조정을 하면 되지 않겠냐고 중간 어디쯤에서 입장을 조정해보고자 노력을 해본다. 그러나 현실은 또 그렇게 녹록지가 않은 게, 공부를 하고 싶어 하는 아이가 거의 없는 것은 물론이고, 센터에서 기초적인 학습을 필요로 하는 아이들 중 약 1/3에 해당하는 아이들은 어떤 수를 써서든 학습을 하지 않으려고 기를 쓰면서 제일 하기 싫은 사람은 하지 말라고 하면 아무도 하지 않으려 할 터이니 그런 소리를 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2. 죽어도 못 해요.

 

이런 아이들에게 이미 학습은 형벌과 다름없는 일이 되어버렸고, 배움의 즐거움과 같은 말들은 학습 상황에서는 전혀 쓸 수 없는 말이란 굳은 신념이 생겨버린 지 꽤 되어 버렸단 것이다. 그래서 이런 아이들에게 학습을 하라고 하면 어떻게든 피하려고 하고, 그것이 조금 만만해 보이는 사람이라면 심지어 심한 말로 기분을 상하게 해서라도 피하려고만 든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런 어려움을 뚫고 교사가 힘들게 어찌어찌 설득을 해서 학습을 진행하려고 하는데, 옆에서 다른 아이들이 즐겁게 놀거나 혹은 다른 활동에 참여하는 소란스러운 일이 벌어지면, 이런 아이들은 금방 주의가 흐트러지면서 학습을 거부하는 사태가 벌어지게 되니 아예 처음부터 선택의 자유가 있으면 안된다는 것이다. 그런 자유를 주면 그 어떤 아이도 학습을 스스로 하지 않으려 하거나, 학습이 의미 있게 진행될 수 없을 정도로 아주 작은 양만을 해치우고 하루 종일 놀려고 할 것이므로, 누구도 억울한 마음이 들지 않도록 심하지 않게 하루에 문제집 두 장 정도의 분량을 정해서 꾸준히 학습을 시키는 것이 좋겠다는 것이 학습 찬성론 측에 선 교사들의 입장이다.

 

또한 센터에서 공익근무요원들로 근무하는 대학생들이나 청년들이 있는데, 가끔은 복무를 하러 오기 전에 다른 아동복지시설 등에서 봉사활동을 한 경험들이 있는 경우도 있다. 그런 경험 속에서 사회복무요원이 되어 센터에서 근무를 하게 되면, 일반적으로 아이들에게 좋은 영향력을 끼칠 수 있도록 노력해보고 싶다는 다짐을 하고 오는 경우가 있다. 특히 그런 열망이 큰 청년들은 대학생으로서 지금껏 자기가 공부해온 경험을 살려 개인적 멘토가 되어주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하는 경우도 있는데, 하루 종일 공부를 안 하려고 요리조리 피하는 모습을 보거나 자신이 보기에 학습 상황에서 너무 불성실한 태도를 보이는 모습을 보면 실망감이 너무 커서 다음부터는 아무것도 도와주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고 고백해오기도 한다.

 

 

3. 아니 누가 해 달랬어요?

 

그렇게 학습이나 프로그램 등으로 계속 갈등을 빚는 아이들이 있어 보호자들과 면담을 신청하여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더욱 곤란한 상황이 생기기도 한다. 아동이 센터에서 생활을 하면서 계속 무례한 태도를 보이고 소란스럽게 굴면서 ‘해야 할 일을 하지 않는 것’ 등과 관련하여 어려움을 토로하고 가정에서의 지도를 부탁드리는데, 보호자께서 그런 경우에 선생님은 아동을 충분히 지도하셨는지 역으로 물어 오시는 경우가 있다. 또 간혹 앞으로 우리 아이가 원치 않는다고 하는 일은 시키지 말아 달라고 하는 등의 말씀을 해 오시는 것으로 결론을 내리는 경우도 있어 당황하게 되기도 한다.

 

그 정도의 학습은 규칙으로 정해서 스스로 하고 있는데 이것을 함께 지킬 수 있도록 노력해달라는 요청에, 우리 아이가 정 안하겠다면 시키지 말아 달라고 하시는데 한편으로는 일리 있는 말씀이시다 싶으면서도 한편으로는 난감하고 부끄러운 마음을 감추기 어렵다. 다만 그 아이가 그렇게 안 하는 동안 다른 아이들에게 미칠 영향에 대해서는 어떤 말씀도 하지 않는 것 역시 당연하다 싶으면서도 난감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보호자께서 하시는 말씀 중에는 안 그래도 힘든데 왜 적절하지 않은 방법으로 학습을 시켜서 아이랑 공연한 갈등을 빚어서 날 오라가라 하느냐는 취지의 뼈 있는 말씀을 하시는 것이 아닌가 새겨듣게 되는 부분이 있다. 그 말씀에 번쩍 정신이 들고 보니 그러게 왜 시키지도 않은 객기를 부려서, 아이도 힘들고 우리도 힘들고 심지어 부모님들까지 힘들게 했는지 아리송할 따름이다.

 

아마 이런 생각은 학교도 마찬가지로 하고 있을 지도 모르겠다. 우리가 어련히 알아서 잘 할 터인데 왜 비전문가인 지역아동센터 종사자들이 공연히 뭣도 모르고 나서서 그러는가 하고 말이다. 하지만 가끔 아이들이 하는 모양새를 보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문득 떠오른 어떤 불안감들이 있어서 그랬을지도 모르겠다. ‘학교 끝났으면 놀아도 돼, 지금 못해도 마음만 내면 나중에 얼마든지 잘 할 수 있어, 지금은 그런 것들 보다 다른 것들이 훨씬 중요해’ 그런 생각들을 하면서도 그런 불안을 떨치지 못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이러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정말 우리가 지나친 일을 하고 있는 걸까? 아이들이 방과 후에 일정한 학습을 하는 게 맞는 걸까? 학교는 제 역할을 다 하고 있는 걸까? 우리가 보기에 부족함이 있더라도 보호자들과 상의만 된다면 아이들을 방과 후에 만이라도 학습에서 해방시켜 주어도 되는 것일까? 답 없는 질문에 고민이 깊어간다.


※ 본 칼럼은 필자의 고유의견이며 ‘교육을바꾸는사람들’의 공식견해가 아닙니다.



<출처> - 파랑새 시설장 성태숙  (현) 구로파랑새나눔터지역아동센터 시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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