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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한국 국가교육과정 혁신을 위한 논의 ? 성취기준을 어떻게 규정할 것인가?
등록일 2020-11-20 11:10:13 조회수 432
내용

한국 교육과정 개발사에 성취기준이란 개념만큼 흥미로운 것도 없다. 성취기준이란 말은 1990년대 후반 이전에는 거의 사용된 적이 없다. 이 말은 당시 미국과 영국에서 유행했던 기준운동(standard movement)과 관련된다. 미국에서는 특히 학생들의 학업성취도가 국제비교 결과 너무 낮다고 판단하고 한국, 일본, 대만, 싱가폴과 같이 교육과정을 표준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자 하였다. 이러한 운동에 가장 앞장섰던 사람이 한국에도 잘 알려진 다이앤 래비치(Diane Ravitch)이다.

 

한국 교육부나 교육학자들은 늘 미국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에 대해 예민하다. 특히 새로운 교육개혁을 시도할 때 그 정당성의 원천으로 미국을 예로 드는 습관이 있다. 성취기준이 그 대표적 사례이다. 문민정부가 출범한 이후 1994년에 만들어진 교육개혁위원회는 입시위주의 교육을 개선하고자 5?31 교육개혁을 통해 학교생활기록부 정책을 도입한다. 각 교과별 성취도를 절대기준 평가에 의해 파악해서 초·중·고등학교의 교육을 정상화하고자 하였다. 이는 교육적인 관점에서 볼 때 좋은 취지였다.

 

미국에서 시험점수를 높이기 위해 제안된 성취기준은 이후에 NCLB (No Child Left Behind) 법과 같은 표준화 시험과 호응하여 사용되었다. 이 때문에 미국교육학회와 미국심리학회를 비롯해 많은 교육학자들은 이러한 운동은 행동주의로의 회귀라고 비판하였다. 아이러니하게도 성취기준이라는 용어, 즉 외래어를 도입한 한국에서는 구성주의와 열린교육의 맥락에서 성취기준 개념을 사용하였다. 같은 어휘가 서로 다른 맥락에서 상이하게 사용된 것이다. 이는 매우 흥미있는 현상이다.

 

아무튼 한국에서 성취기준은 미국에서의 용어를 차용하는 동시에 당시 공교육 정상화 노력의 일환으로 도입한 국가공통 절대평가 기준 개발에 활용되었다. 교사들이 절대평가를 수행하려면 학생들의 수준을 등급화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그것을 판단할 수 있는 성취기준이 있어야 했던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흔히 성취기준과 평가기준에서 모두 쓰이는 ‘기준’을 같은 것으로 읽고 있지만 엄밀히 말하면, 성취기준은 성취해야 하는 표준으로서의 기준(스탠다드, standards)이고 평가기준은 학생들이 성취기준에 얼마나 도달했는지 결정을 하는데 사용되는 판단 기준(크라이테이라, criteria)인 것이다. 즉, 성취기준은 ‘표준’이고 평가기준은 ‘잣대’인 것이다. 이 두 가지가 같은 개념이 아니라 동음이의어인 셈이다.

 

그런데 여기까지만 해도 개념상 혼란만 잘 유의하면 되니까 큰 문제는 아니다. 실제 문제는 성취기준이 교육의 자율성과 다양성에 방해가 될 수 있다는 데서 나온다. 상세한 성취기준은 먼저 교과서의 다양성을 위축시킬 수 있다. 현재 국가교육과정에서의 성취기준이 매우 상세한 수준이라고 보긴 어렵다. 물론 이는 관점에 따라 의견이 갈릴 수 있다. 그러나 한국의 주요 교과서 제도가 검정제도(초등의 경우도 검정제도를 근간으로 가기로 이미 결정)라 할 때, 검정에 탈락할 수 있는 위험부담을 가지는 교과서 출판사와 저자들은 교과(목) 교육과정의 영역 구분과 그에 따른 성취기준대로 교과서를 개발함으로써 사실상 교과서마다 큰 차이를 느끼기 어렵다. 다시 말해 상세한 성취기준은 검정 교과서의 다양성을 해칠 수 있다.

 

[그림] 성취기준에 대한 의사결정 트리

성취기준은 ‘내용+행동’ 즉, ‘~을 ~할 수 있다’ 또는 ‘~을 ~한다’로 진술되어 있다. 한국에서의 성취기준은 매우 흥미롭게도 블룸(Benjamin Bloom) 식의 도착점 행동(~ 할 수 있다)과 ‘조사한다, 탐구한다, 토론한다’ 등 활동중심 수업을 유도하는 진술문이 혼용되어 있다. 이러한 혼용을 없애고, 모두 도착점 행동으로 나타내자는 주장도 있을 수 있으나 그렇게 되면 수업이 보다 행동주의로 흐를 가능성이 높아질 것이다. 한국에서 이러한 혼용이 나타난 이유는 위에서 말한 5·31 교육개혁의 이중적 성격과 관련이 된다.

 

그렇다면 앞으로 이 성취기준 규정을 어떻게 고쳐야만 보다 교육과정의 취지가 충실히 살아날 수 있을까? 먼저 [그림]에서 보는 바와 같이 성취기준을 없애고 교과목 목표(③)나 영역별 목표(④)로 이를 대체하는 경우를 생각해볼 수 있다. 애초에 성취기준 역시 교과목표와 단원목표를 보다 더 잘 달성하기 위한 것이다. 이렇게 되면 교사의 자율성이 훨씬 확대될 수 있다. 다만 성취기준이 교과목표나 단원목표를 ‘가이드’하는 기능이 있다는 주장도 일리가 있다. 이러한 주장에도 귀를 기울여 최적점에서 타협한다면 성취기준을 진술하되 이를 ‘예시’(②)라고 교육과정 기준 문서에 명시하는 것이 필요하다. 어차피 교육과정 개발은 절충의 기예라고 볼 수 있기 때문에 타협점을 찾는 것이야말로 좋은 교육과정을 만들어 가는 과정이라 볼 수 있다.

 

그리고 보다 교사의 자율성을 확대하기 위해 “교사는 교과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필요한 경우 자신의 전문성과 교실의 맥락에 근거하여 성취기준을 개발하여 사용할 수 있다”는 조항이 이후 국가교육과정 문서에 포함될 필요가 있다. 오늘날 전체 학생 수 60명 이하의 소규모 학교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으며, 학생들이 처한 상황과 맥락이 계속 다양해지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교사는 교과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필요한 경우 자신의 전문성과 교실의 맥락에 근거하여 성취기준을 개발하여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 이 글을 자세히 읽어본 독자들은 이러한 주장이 자유방임적 자율성을 지지하는 관점이 아니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교육과정은 중앙정부와 시도교육청, 그리고 단위학교와 교사 사이의 적절한 권한 분배 속에서 그 의미가 살아날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 이 시점에서는 국가교육과정에 있어 교사의 자율성과 전문성에 대한 인정이 꼭 필요하다.

 

※ 본 칼럼은 필자의 고유의견이며 ‘교육을바꾸는사람들’의 공식견해가 아닙니다.




<출처> - 경희대학교 교육학과 교수 성열관 https://21erick.org/column/5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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