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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할아버지는 사춘기
등록일 2021-04-29 12:16:26 조회수 5552
내용

[기고] 할아버지는 사춘기

박혜영 수필가

편집부 기사입력 2021/01/27 [10:01]


올해는 아버지가 돌아가신 5주기가 된다.

 

어머님은 3년째 재활병원에 계시지만 최근에는 코로나19로 면회도 못 하는 상황이다. 코로나19 거리두기 뉴스에 눈은 고정되어 있으나 망막을 덮는 것은 다른 것이다. 공허한 눈빛으로 하루하루를 보내시는 어머니 병상 속으로 가고 있다.

 

오늘도 전화를 드리니 입안이 헐어 섭생을 제대로 못 하신다기에 탈이 나면 안 된다는 말을 하자 어머니에게 곧장 돌아온 말은

 

정말 큰 탈이 나 얼른 아버지 곁으로 가고 싶다라고 하신다.

 

당신이 엮던 생의 끝을 잘 매듭지어야 함을 느끼며 버티지만, 너무 힘들어하시는 모습이 가슴 아프다. 병상 생활을 4개월 하시다 돌아가신 아버지가 가장 부럽다는 어머니는 그래도 살아계셔야 자식들의 버팀목이 된다는 말의 끈을 잡고 있다. 이 세상과 저 세상의 중간 지점을 꿈속처럼 서성이며 보내고 계신다.

 

오래전 아버지 살아생전 연세가 드시고 기력이나 청력이 많이 떨어졌을 무렵이다.

 

형제들이 자식들 사춘기에 관한 이야기를 하며 반항기로 대답도 하지 않는 아이들의 위해 대화를 하고 있었다. 옆에서 조용히 듣고 있던 조카에게 할아버지께 가서 가위를 가져오라 시켰다.

 

잠시 후 조카는 빈손으로 돌아왔다.

 

왜 가위 없대?”

 

아니 할아버지도 사춘긴 가봐 물어봤는데 대답을 안 해!”

 

우리는 잠시 이해가 필요했고 폭소를 했다.

 

방금 어른들 대화를 듣던 아인, 귀가 어두워 잘 듣지 못하는 할아버지 증상을 사춘기 증상으로 이해를 한 것이다.

 

지금도 어린 시절 엄격하셨던 아버지 모습이 내 생에 축이 되어 동행한다.

 

지금 생각해 보면 상당히 세련된 부모님이셨다. 교육에 대한 넓이와 깊이를 헤아리지 못해 아버지를 원망하기도 하였지만, 추억 속의 아버지는 따뜻했다.

 

권위와 위엄이 아버지의 고유권한이었고, 어머니는 아버지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이었다. 어머니는 늘 아버지를 자식 대하듯 곱게 섬기는 그런 분이셨다.

 

부모님이 연로하시고 자립 생활이 힘들어질 무렵 두 분 중 한 분이 돌아가시면, 아들에게 위탁할 생각 말고 실버타운 같은 곳에 가실 생각을 하시라 말하였다. 만약 며느리가 이런 말을 하였다면 노여움이 크셨겠지만, 딸이라서 할 수 있는 말이다.

 

그런데 나중에 보니 어른들에게 이 말을 옳지 않은 말이었다. 큰딸에게 작은 딸년이 그렇게 말한다고 섭섭해하셨다. 그런데 정말 말처럼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갑작스러운 뇌경색으로 어머니는 3년째 재활병원이 계신다. 처음에는 열심히 재활 활동을 하면 집으로 돌아가 여생을 마감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지만, 기력이 없으신 어른이라 정상으로 돌아오기 쉽지 않았다.

 

형제들은 며칠이라도 집에서 모시고 싶어 하지만, 반신을 못 쓰시는 어머니는 매사가 불편하시다면 자식을 집에 머무르는 걸 마다하신다. 몸은 쇠약해도 의지와 자존심을 그대로 지니고 계신 어머니는 병원에서도 총기가 있는 할머니로 칭한다. 한 병실에 6명으로 가만히 누워계시지만 한 분 한 분이 어떤 삶을 사셨는지 알 수 있다고 하신다. 찾아오는 자식들 행동이나 자세를 보면서 하시는 말씀이다. 자식들은 해드리고 싶은 것이 많기만 하여 허둥대지만, 이제는 한계가 있는 상황이다.

 

전화기로 들려오는 어머니의 건조한 목소리는 눈앞 파도 거품이 하~얗게 밀려들었다.

 

여위고 주변의 소리를 제대로 듣지 못하던 아버지의 사춘기를 내 손끝으로 느끼던 시간이 지금 나에게 더할 수 없는 소중한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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