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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비판적 사고와 사실적 지식을 둘러싼 순위 논쟁은 쓸모없어
등록일 2020-11-12 10:11:20 조회수 19942
내용

비판적 사고는 논리적 사고

 

교육청은 수년 전부터 학교에 비판적 사고를 교육하라는 지침을 전달했다. 그동안 교사들이 비판적 사고를 가르치지 않았다는 뜻은 아니다. 수업에서 교과의 내용에 중심을 두었고 사고하는 기술을 제한적이거나 암묵적으로만 가르쳐왔던 관행에 대한 반성이었다. 학생들이 초·중·고 12년 동안 제도교육을 받았지만 단순하게 교과 내용만을 기억하거나 새로운 지식을 배우는 사고기술을 모를 수 있다는 사회적 우려도 작용했다.

 

교육에서 비판적 사고는 교과에 따른 교육내용, 주제, 문제와 상관없이 사고 구조를 파악하는 사고기술이다. 비판적 사고 전문가들은 사고기술의 목록을 제시했는데 에드워드 글레이저는 다음과 같은 능력을 들고 있다.

 

“(a) 문제를 인식하고, (b)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적절한 수단을 찾고, (c) 관련된 정보를 찾아 분류하고, (d) 숨은 가정과 가치관을 파악하고, (e) 언어를 정확하고 분명하게 이해하고 사용하며, (f) 자료를 해석하고, (g) 증거를 판단하고 주장을 평가하고, (h) 명제들 사이에 논리적 관계가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i) 정당한 결론을 도출하고 일반화를 하며, (j) 얻은 결론과 일반화를 시험에 부치고, (k) 더 많은 경험에 근거해 믿음을 재구성하며, (i) 일상에서 특정 문제에 대해 정확한 판단을 내리는 능력이다.”

 

비판적 사고에는 이러한 사고기술만 있지는 않다. 마이클 스크라이븐은 ‘관찰하거나 질문을 하는 방식’도 집어넣는다. 이러한 틀에 대해 심각하게 부정하는 전문가들이 있고 교육청은 그들의 입장과 비슷하다. 그들은 “비판적 사고를 규범적이고 방법론적인 기준인 논리주의의 보편성, 객관성 등으로만 한정하면 제대로 가르칠 수 없다”라고 주장한다. 모든 사고에는 개인의 주관적 상황이나 사회적 맥락이 들어있는데 이를 반영하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학생들에게 훌륭한 사고를 가르치려면 학교 교육과정에 비분석적, 상상적, 맥락적 사고방식 등이 반영되어야 한다. 이를테면 ‘공감’, ‘성찰’, ‘창의성’, ‘개념의 불확실성을 인정하는 태도’ 등이 들어가야 한다. 2015 개정 교육과정에서도 논리주의적 비판적 사고를 ‘지식정보처리역량’으로 비논리주의적 비판적 사고를 ‘창의적 사고역량’으로 대등하게 두고 있다. 교사들도 초·중·고는 기본교육과정이기 때문에 한 유형에 치우쳐 가르치는 방식을 바람직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교사들이 교육과정의 시간적·공간적 한계를 고려하여 어떤 유형을 먼저 가르칠 것이냐에 대한 선택은 쉽지 않다.

 

교수학습의 효율성을 고려하면 논리적 사고기술을 우선시해야 한다. 비논리주의적 사고기술을 먼저 가르치거나 학습할 때의 한계를 무시할 수 없다. 이를테면 교사는 공감 능력을 집단적 교육방식으로는 가르칠 수는 없다. 모든 학생의 주관적인 감정이나 태도를 일반화하여 보편적 원리로 설명할 수 없다. 설령 학생들이 그 한계를 극복하고 공감하는 방법을 학습했어도 쓸모없는 도덕 지침이 될 수 있다. 공감은 어리석은 판단에 근거할 때가 많고 무관심과 잔인함을 유발하기도 한다. 이를테면 유권자를 비이성적이고 부당한 정치적 결정으로 자주 이끌며 의사의 의학적 판단을 해치기도 한다. 반면 우리가 어떤 과제를 해결할 때 논리주의적 사고기술로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놓거나 이타적이기까지 하다면 그 누구라도 반대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 주위를 보면 선행을 하더라도 더욱 효과적인 선행을 알기 때문에 실효성을 따져 순위를 정한다. 창의적 사고기술을 먼저 가르치는 방식도 비효율적이다. 창의성은 기억을 토대로 발산하는 사고의 힘인데 새로운 아이디어를 잡다하게 뽑아내는 발산적 사고기술이 아니다. 어떤 아이디어를 문제에 적용할지를 아는 통찰력이다. 이를테면 뉴턴만이 사과가 떨어지거나 와트만이 주전자에서 증기가 소리쳐 나오는 현상을 보지는 않았다. 그들에게는 이러한 사태들의 의미나 함축을 다각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사고기술이 있었는데 그것이 논리적 사고였고 이를 통해 다른 사람들에게는 불가능했던 창의적 통찰을 할 수 있었다. 케리 월터스는 비논리주의적 입장을 따르지만 “학습에서 논증 등 엄격한 논리적 분석 기법이 학습능력을 높아지도록 하는 필수 조건이다”라고 주장한다. 특히 분석, 추론, 평가 등에 대한 초보적인 논리적 사고기술은 모든 학생이 학습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런데도 교육청의 비판적 사고에 대한 장학이나 연수를 보면 실제로는 비판적 사고를 비논리주의적 입장으로만 해석하거나 권장하는 듯이 보인다. 이를테면 강원도 교육청은 ‘창의 지성과 공감 지성을 핵심으로 하는 창의 공감 교육과정’, 전남 교육청은 ‘소통을 통해 상상력을 키우는 창의 융합 교육’, 전북 교육청은 ‘창의적 문제 해결 능력’, 경기도 교육청은 ‘창의 지성 교육’으로 해석한다. 이러한 태도는 매우 우려스럽다. 교육청이 지식 교육에 대한 대안으로 비판적 사고를 내세우면서 오히려 편향적으로 비논리주의적 사고관에만 집중하는 정책은 지식의 학습 원리에 어긋나고 모든 학생의 학력을 골고루 높일 수도 없다.

 

 

키워드 검색은 비판적 사고력을 높일 수 없어

 

비판적 사고를 교육할 때에 사실적 지식을 근간으로 해야 하는 것도 잊지 않아야 한다. 사실적 지식을 많이 기억할수록 교사는 효과적으로 가르칠 수 있고 학생들도 실제로 지식을 전이할 수 있다. 직관적으로 생각해봐도 어떤 고정된 틀이 있어야 상품을 생산하지만 아무리 좋은 틀이라도 재료가 없거나 부족하면 제 역할을 할 수 없다.
이를테면 교육청은 문해력을 기초학력으로 분류하였고 교사들에게 적극적으로 가르치라고 한다. 다수의 미래학자가 지적하듯이 문해력은 인공 지능이 대신할 수 없는 고유한 인간 능력이다. 문해력을 높이는 사고기술에는 텍스트를 문장과 문장, 문단과 문단의 관계를 고려하여 읽으면서 요약, 비교, 분석, 비판, 평가, 대안 제시하기 등으로 독해하는 방법이 있다. 다음은 비판적 독서법에 근거하여 출제된 2020년 한양대학교 1차 논술 모의문제의 논제와 제시문 중에 하나이다.

 

[문제] 지문 (가)를 참고하여 지문 (나)를 비판적으로 분석하고, 이를 토대로 지문 (다)와 (라)의 문제에서 보이는 공통점을 찾아 그 해결 방안을 제시하시오.(1200자, 100점)

 

(가) 의인관(Anthropomorphism)은 동물이나 사물과 같은 인간 이외의 존재에게 인간의 정신적 특성을 부여하려는 입장을 말한다. 그러나 인간은 오랫동안 스스로를 유일무이한 주체로서 자아 이외의 객관적 세계는 자신의 의식 내용에 지나지 않는다는 솔립시즘(Solipsism) 혹은 유아론(唯我論)적 경향을 지녀 왔기 때문에, 사나운 바람은 자연의 분노로 해석하고 상어 떼의 공격은 적대적인 것으로 생각해 왔다. 그런데 동물과 관련해서 사람들은 종종 정반대의 실수를 한다. 인간은 바로 자기 눈앞에 있는 것을 등한시하고 동물이 아는 것, 행동하는 것, 생각하는 것, 느끼는 것을 과소평가한다. 사람들에게도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이 있는데, 이는 바람직한 선택을 내리며 세상을 살아가게 한다는 점에서 유용하다. 마찬가지로 동물도 똑같은 감정적 지침을 가지고 있는데, 그들은 감정 표현을 숨기거나 비밀로 하지 않는다. 동물의 감정 세계는 매우 공개적이다. 그들은 자신에게 일어나는 일에 대해 느끼는 바를 있는 그대로 드러낸다. 이런데도 과학자들은 우리가 동물이 생각하거나 느끼는 것을 알 길이 없다고 주장해 왔다. 오늘날 이 주장은 더 이상 과학적 자료를 보수적으로 해석하려는 입장이라고만 보기는 어렵다. 이는 현재 상태를 유지하고 인간이 우월하다는 생각을 유지하기 위한 구실일 뿐이다. 사람들은 역사적으로 상당 부분 인간의 감정과 사고의 특성에 기반을 두어 스스로를 다른 동물보다 우월한 존재로 구분 지어 왔다. 그러나 동물의 감정을 부인하는 것은, 거의 매일 새롭게 나오고 있으며 그 수가 폭발적으로 늘고 있는 확고하고 흥미진진한 과학적 연구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이다. 동물이 감정적 존재인 것은 우리가 원해서가 아니라 동물 역시 사람과 마찬가지로 생존을 위해 감정을 지녀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흥미로운 점은 이러한 우리의 직관이 과학 연구에 의해 강력히 뒷받침되고 있다는 것이다. 과학은 우리가 지금까지 감지해 오던 것을 이제야 따라잡고 있다.

 

(가)는 고등학교 교과 중에 『독서와 문법』 교과서에 실린 마크 베코프의 《모든 동물은 생각하고 느낀다》라는 글에 나온 일부이다. 논제를 비판적 사고로 해석하면 첫째, (가)의 관점에서 (나) 주장의 근거가 논리적으로 오류이거나 참이라고 해도 결론이 옳지 않다는 의미이다. 둘째, 첫째 논점을 해결한 후에 (다), (라)에 공통적으로 나타난 문제를 해결하는 대안을 쓰라는 요구이다. 학생들이 글의 구조와 관련된 ‘주장과 근거’, ‘비교와 대조’, ‘원인과 결과’, ‘문제 제기와 대안’, ‘전제와 결론’, ‘주장과 반박’, ‘개념 나열식 전개’, ‘일반적-구체적 전개’, ‘통시적 전개’ 등 독해 기술을 안다고 하더라도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그렇다”라고 응답할 교사나 학생들은 드물다고 본다. 이 문제를 잘 풀 수 있는 학생은 ‘그뿐 아니라 지문과 관련된 사실적 지식이나 어휘의 의미를 잘 알고 있는 학생’일 가능성이 높다. 2015년에 출제된 연세대학교 인문계열 논술 고사에 나온 다음의 텍스트는 학습에서 사실적 지식의 중요성을 잘 설명한다.

 

(나) 동물들은 자의식적이지 않으며 단지 목적에 대한 수단으로서 존재할 따름이다. 그 목적은 인간이다. 우리는 “왜 동물들이 존재하느냐?”라고 질문할 수 있다. 하지만 “왜 인간이 존재하는가?”라는 것은 무의미한 질문이다. 동물들에 대한 우리의 의무는 인류에 대한 간접적인 의무일 뿐이다. 동물의 본성은 인간의 본성과 유사성을 가진다. 그리고 우리는 동물에 대한 우리의 의무를 수행함으로써 간접적으로 인류에 대한 우리의 의무를 수행한다. 따라서 만일 개가 그의 주인에게 오랫동안 충실하게 봉사한다면, 그의 봉사는 인간의 봉사와 마찬가지로 보상받을 가치가 있다. 그리하여 개가 봉사가 어려울 정도로 늙어버리더라도, 그 주인은 개가 죽을 때까지 함께 있어야 한다. 그러한 행동은 인간에 대한 우리의 필수적인 의무들을 지지한다. 동물의 어떤 행동이든 인간 행동과 유사하고 동일한 원리로부터 나온다면, 우리는 동물에 대한 의무를 갖는다. 우리는 인간에 대한 상응하는 의무를 함양하기 때문이다. 만일 어떤 사람이 자신의 개가 더이상 봉사할 수 없다는 이유로 그것을 쏴 죽인다면, 그의 행동은 인류에 대해 보여주어야 하는 자신의 인간성에 해를 입히는 것이다. 그가 자신의 인간적인 감정을 구태여 억눌러야 하는 것이 아니라면, 그는 동물에게 친절하게 대해야만 한다. 동물에게 잔인한 사람은 사람들을 대하는 데에서도 거칠어지기 때문이다. 우리는 동물을 어떻게 대하는지에 따라 사람의 마음을 평가할 수 있다. 라이프니츠는 관찰 목적으로 아주 작은 곤충을 이용하고는 그것을 조심스럽게 나뭇잎 위에 다시 되돌려놓았다. 그것은 그의 행동으로 인한 어떠한 해도 입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그는 아무런 이유 없이 그러한 생명체를 파괴한다면 미안한 일이라고 느꼈을 것이다. 그것은 인간에게 자연스러운 감정이다. 인간처럼 말하지 못하는 동물들에 대한 자애로운 감정은 인류에 대한 인간적 감정을 발전시킨다.

 

(나)는 고등학교 『생활과 윤리』 교과서의 ‘인간중심주의’와 ‘생태중심주의’ 단원에 실린 칸트(Immanuel Kant)의 도덕론과 관련해 《윤리학 강의》에서 발췌·편집한 글이다. 이 지문에는 (가)를 독해할 때 회상할 수 있는 맥락적 단서가 들어있다. 칸트는 (나)에서 “동물에 대한 의무를 인류에 대한 의무와 유비적 관계로 설정한 뒤에 동물에게 친절을 배푸는 태도는 우리의 인간성을 함양시키며 인류애를 발전시키는 길이다”라고 주장한다. (가)와 다르게 (나)에서 둘 사이의 관계는 동등하지는 않지만 “동물을 보호해야 한다”라는 입장은 일치한다. 만약 어떤 학생이 (나)에 나온 어휘나 문장의 의미를 잘 알고 있다면 (가)를 그다지 어렵지 않게 분석했을 것이다.

 

사실적 지식을 기억하지 않더라도 컴퓨터에 키워드를 입력하면 그 의미를 검색할 수 있고 지식을 다른 상황에 전이할 수도 있다. 하지만 검색했다고 곧바로 자신의 지식이 되지 않으며 전이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김민정의 ‘고비라는 이름의 고비’라는 시를 보면 ‘키워드 검색’의 한계를 분명하게 알 수 있다.

 

고비라는 이름의 고비 (김민정)

 

고비에 다녀와 시인 C는 시집 한 권을 썼다 했다
고비에 다녀와 시인 K는 산문집 한 권을 썼다 했다
고비에 안 다녀와 뭣 하나 못 읽는 엄마는
곱이곱이 고비나물이나 더 볶게 더 뜯자나 하시고
고비에 안 다녀와 뭣 하나 못하는 나는
곱이곱이 자린고비나 떠올리다 시방 굴비나 사러 가는 길이다
난데없는 고비라니, 너나없이 고비라니……
너나없이 고비는 잘 알겠는데 난데없이 고비는 내 알 바 아니어서
나는 밥숟갈 위에 고비나물이나 둘둘 말아 얹어드리는데
왜 꼭 게서만 그렇게 젓가락질이실까
자정 넘어 변기 속에 얼굴을 묻은 엄마가 까만 제 똥을 헤쳐
까무잡잡한 고비나물을 건져 올리더니
아나 이거 아나 내 입 딱 벌어지게 할 때
목에 걸린 가시는 잠도 없나 빛을 보자
빗이 되는 부지런함으로 엄마의 흰 머리칼은 해도 해도 너무 자라
반 가르마로 땋아 내린 두 갈래 길이라는데 어디로 가야하나
조금만, 조금만 더 필요한 위로는 정녕 위로 가야만 받을 수 있는 거라니……
그렇다고 낙타를 타라는 건 상투의 극치,
모래바람은 안 불어주는 게 덜 식상하고 끝도 없는 사막은 안일의 끝장이니
해서 나는 이른 새벽부터 고래고래 노래나 따라 부르는 까닭이다
한 구절 한 고비, 엄마가 밤낮없이 송대관을 고집하는 이유인 즉슨이다

 

김민정의 시를 인터넷으로 검색한다고 해서 멋지게 감상하거나 전이하는 일은 쉽지 않다. 검색기술 자체는 너무나도 얕은 기술이라 학습할 때 오래 걸리지 않고 많이 이용했다고 좋은 자료를 얻게 되는 것도 아니다. 검색자가 사실적 지식을 얼마나 아느냐에 따라 검색하는 자료의 범위와 질에 차이가 나며 좋은 자료를 얻을 가능성도 달라진다. 이를테면 ‘고비’라는 단어만 보더라도 시에서는 아홉 번이나 쓰이는데 인터넷으로 검색하면 21개의 뜻이 있다. 시에 대한 감상력을 높이려면 각 의미의 차이를 구분할 수 있어야 한다. 그에 그치지 않는다. 고비는 “고삐라는 단어의 경상도 사투리이다”라는 하나의 문장을 아는데도 ‘고삐’, ‘사투리’의 의미를 기억하고 있어야 하니 실제로는 검색할 단어는 훨씬 많다. ‘고비’와 ‘고비 나물’이 동의어라는 관계도 알아야 한다. 첫째, 둘째, 셋째 행에 나오는 고비는 사전적 뜻과는 무관하게 몽골고원에 있는 ‘고비사막’으로 짐작되는데 그에 대한 여러 편의 시를 기억하거나 후반부의 모래바람을 통해 추론할 수 있어야 한다. 이처럼 고비에 관련된 여러 어휘의 뜻과 맥락적 의미까지 하나하나 구분하여 이해할 때만 비로소 ‘고비라는 이름의 고비’라는 시에 대한 감상력을 높일 수 있다.

 

교육청이 “인공 지능으로 지식에 대한 기억을 대체할 수 있다”라고 설명하면 그럴듯해 보이지만 이 시에서 보듯이 사실적 지식이 부족할수록 검색하는 횟수는 많아지고 전이하는 일은 간단하지 않다. 마치 ‘끝말잇기 놀이’처럼 학생이 어휘를 검색했을 때 설명하는 어휘나 문장의 의미를 모른다면 다시 그것을 검색해야 하고, 다시 또 다시로 이 과정이 반복되면 작업기억은 인지 과부하 상태에 빠지게 되어 제대로 된 학습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교육과정만 보더라도 사고기술에만 치우치는 교육의 위험성을 금방 알 수 있다. 교과서는 초·중·고 내내 교과의 전체 구조를 보여주는 소수의 핵심 개념으로 되어있지만, 이전 과정에서 학습해야 할 내용을 그대로 반복하여 게재하지는 않는다. 그러니 상위학교의 교과서에는 생략된 정보가 숨어있을 수밖에 없고 이전 과정에서 제대로 학습하지 않으면 ‘학습의 누적적 결손(cumulative deficit of learning)’은 불을 보듯 뻔하다.

 

영국의 교육 전문가인 데이지 크리스토둘루에 따르면 어떤 과제를 해결할 때 특정한 지식이 장기기억으로 저장되어 있으면 바로 쓸 수 있거나 ‘점화 효과에 따른 활성화 확산’을 기대할 수 있다. 이를테면 교사가 “황석영이 쓴 ‘무기의 그늘’을 가르친 후에 조정래의 소설 ‘태백산맥’과 관련된 문제로 시험을 치른다”라고 가정해보자. 다수 학생이 해답을 쓰지 못했다면 ‘무기의 그늘’을 수업할 때 소설 지식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고 짐작할 수 있다. 어떤 학습이든 처음에는 지식에 대한 이해로부터 출발하고 그 후에 적용, 평가, 창의력 등으로 학습 수준이 높아진다.

 

교사가 수업이 실패한 원인을 찾고 교수·학습의 질을 개선하려면 정보를 이해하는 메커니즘을 알아야 한다. 뇌 과학에 따르면 우리에게 시각이나 청각 정보가 들어오면 전두엽은 그와 관련된 지식이 과거에도 쓰였거나 뇌에 유사한 형태로 저장되었는가를 철저하게 검색하면서 정보처리를 시작한다. 시험문제를 잘 풀지 못한 학생이라면 그의 장기기억에는 관련된 정보가 없거나 부족하다고 볼 수 있다. 혹은 그 정보는 장기기억의 어딘가에는 남아있지만 산만한 상태라 찾지 못했을 수 있다. 예컨대 A라는 정보를 A, A, A라고 기계적으로 기억했다면 그렇게 되었을 수 있다. 그 대신에 정보를 조직적이고 부호화하여 A라는 정보를 B하고 연결하고, B는 알고 보니까 C이고, C를 소설의 전개 방식과 관련되어 보면 이러저러하다고 생각하면서 학습하였다면 해답을 적었을 것이다.

 

교사가 다수의 뇌에 저장되어 있지 않던 새로운 지식을 가르치고 바로 시험을 치렀을 수 있다. 이때 장기기억에서 인출은 불가능하고 새롭게 정보를 처리하려면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 기억 메커니즘에 따르면 정보가 감각기억으로 들어오면 변연계에 있는 편도체는 관심을 끌거나 흥미로운 정보만을 선별하여 측두엽의 해마로 보낸다. 이 정보를 받은 해마는 작업기억에서 부호화와 조직화를 통해 이해·추론·의사결정 같은 복잡한 과제를 수행하여 장기기억으로 저장한다. 이런 후에야 시험문제와 관련된 정보를 장기기억에서 찾아 해답을 적을 수 있다. 결론적으로 학생들이 시험문제를 풀지 못했다면 학습의 누적적 결손 등으로 기억된 배경지식이 부족하거나 교사가 학습할 시간을 주지 않고 성급하게 시험을 치른 탓이다.

 

사실적 지식은 비판적 사고에 필수역량

 

내 주장을 요약하면 이와 같다. 비판적 사고는 논리주의적이든, 비논리주의적이든 학습해야 할 역량이다. 무반성적 사고는 어떤 증거를 제시하지 않고서 바로 결론으로 건너뛰거나 제대로 생각하지도 않고 증거, 주장, 결정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는 태도로서 경계해야 한다. 교사들이 학생들의 비판적 사고력을 높이겠다면 다양한 지적 기준, 예컨대 명료성, 연관성, 적절성, 일관성 등의 조건을 만족시킬 수 있는 사고기술을 당연하게 가르쳐야 한다. 다만 비판적 사고에 공감이나 창의성 등이 들어가지만 논리주의적 사고보다 우선시하는 교육적 방향은 효과적이지 않다. 마치 쌀가게에 가서 밥을 달라고 하거나 바늘허리에 실을 매어 쓰는 모습처럼 성급하다. 교사들이 학생들에게 일반적 사고기술을 가르쳐 주위 현실에 대해 다각적으로 통찰하도록 하고 주관적 맥락에 따라 해석하도록 하는 방식이 낫다. 사실적 지식과 비판적 사고 중에 우선순위를 두는 논쟁도 쓸모없는 탁상공론이며 어떻게 해야 실제로 학습이 이루어지느냐만 중요하다. 사실적 지식을 기억했어도 사고기술을 모른다면 과제를 해결할 때 비효율적이며 사실적 지식이 부족하면 사고기술을 제대로 써먹을 수 없다. 사실적 지식이든 절차적 지식이든 ‘부호화 → 유지 → 인출’을 반복하여 지식이 학생들의 장기기억에 남게 하고 그 수준이 높아지도록 하는 방식이 좋은 교육이다. 사실적 지식을 직접적인 경험으로 제한할 이유도 없다. 일차함수는 y=ax+b(a, b는 상수, a≠0)와 같이 y를 x에 관한 일차식으로 나타낸 함수이다. 이 지식은 추상적 개념이지만 현실에서 일차함수가 적용되는 사례는 무궁무진하다. 이를테면 등산을 좋아하는 사람은 이른 봄에 산에 갈 때 옷을 챙겨가는 일이 흔하다. 보통 해발 1Km씩 올라갈 때마다 기온이 6도씩 떨어지기 때문에 감기에 걸리지 않으려면 여벌의 옷이 필요하다. 이때 일차함수와 관련된 기울기와 절편에 대한 지식을 알고 있으면 어느 정도 두꺼운 옷을 준비할지를 예측할 수 있다. 만일 평지에서 기온이 섭씨 10도라면 이게 바로 y 절편이고 기울기는 ?6이기 때문에 기온과 해발고도와의 관계식은 y= -6x+10 이 된다. 만일 1500m나 되는 높은 산에 오른다면 기온이 섭씨 1도로 떨어질 것이니까 당연하게 두꺼운 옷을 준비해야 한다.


<출처> https://21erick.org/column/5381/  박제원, 전주완산고등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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