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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국가 교육과정을 폐지한다고 자기 주도성이 높아지지 않는다
등록일 2020-12-04 10:32:39 조회수 926
내용

지난 10월 8일에 ‘교육을바꾸는사람들’, ‘좋은교사운동’, ‘서울특별시교육청’이 ‘우리의 미래 교육과정을 어떻게 만들어 갈 것인가?’라는 제목으로 공동주최한 토론회가 있었다. 이종태 건신대학원대 석좌교수는 ‘미래지향적 교육과정을 위해 생각해야 할 것들’이라는 주제로 발표를 했는데 이에 대한 평을 쓰고자 한다.

 

국가 교육과정을 폐지해야?

 

이종태 교수의 교육과정과 관련된 논지는 현행 2015 국가 교육과정의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해 논의 중인 2022년 개정에 대해 ‘개정’이라는 사고를 전환하여 아예 ‘국가 교육과정 폐지’를 제안한다. 이런 주장의 맥락에는 여러 근거가 있지만 크게 두 가지로 묶을 수 있다.

 

첫째, 국가 교육과정 체제에서는 학생들의 ‘자기주도 학습’이 이루어질 수 없다.

 

국가 교육과정은 배워야 할 지식체계와 그것을 배우는 순서와 일정을 촘촘히 정해 놓았기 때문에 교육과정 체제에서 학생들이 어느 정도나 자기 주도성을 발휘할 수 있을지 회의적이다. 학습자에게는 성인처럼 학습자의 판단력과 선택 역량을 키우는 교육과정이 필요하다. 즉 오늘날에는 학생들에게 미래의 불확실성이 매우 큰 제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살아갈 학습 환경이 필요하다. 이런 측면에서 과거의 시야 속에서 선택 범위를 좁게 규정하고 있는 현행 국가 교육과정 체제는 ‘자기주도 학습’이라는 시대적 요구와 양립하기 어렵다. 더구나 디지털 노마드로 지칭되는 오늘날의 청소년에게는 더 말할 나위가 없다. 그런 상황에서 학습 의욕이나 열의가 나올 수 없고 따라서 좋은 성과를 기대하기도 어렵다. 그런데도 이런 패러다임을 고수하는 일은 참으로 이해하기 어렵다. 이는 빈곤층 자녀들이 주로 다니는 미국의 메트 스쿨의 성공사례에서 알 수 있다. 메트 스쿨의 학생들은 강력한 학습 동기를 바탕으로 할 때 성공적인 학습이 가능했고 모든 학생이 4년제 대학에 진학했다. 즉 진로와 긴밀하게 관련될 때 가장 강력한 학습 동기가 발휘된다. 그런데도 기존의 국가 교육과정을 보면 가급적이면 실제 사태와 먼 이론적 지식을 미덕으로 여겼다.

 

둘째, 국가 교육과정은 학교 교육과정을 ‘지식’ 중심으로 삼게 하며 이로 인해 학교에서는 다수가 낙오되고 있다.

 

근대 학교의 교육과정은 학문적 성격을 갖게 되면서부터 교육 기회 보편화를 통해 학교에 들어온 대다수 저소득층 자녀들의 수요에는 부합되지 않았다. 이 점에서 근대 학교는 출발부터 소수의 성공과 다수의 실패를 만드는 기만적인 이중구조였다. 그 중심에 학문 중심 교육과정이 있었다. 사실 학생들은 국가 교육과정 체제에서 왜 배워야 하는지도 모를 잡다한 지식들을 그것도 일정하게 구획된 시간과 공간 안에서, 생각과 행동의 통제를 받으면서 (지금도) 배우고 있다. 이는 참으로 고역스러운 일이다.

 

이종태 교수의 주장을 다시 한번 정리하면 “차기 교육과정에 대한 논의에서 국가 교육과정을 폐지하거나 최소한 지식 중심이 아닌 진로나 체험 중심의 국가 교육과정이 되도록 해야 한다.”는 취지이다. “학습자는 교육과정이 진로와 관련되어 있을 때 강력한 학습 동기를 갖게 되는데 지금까지의 국가 교육과정은 오히려 지식 중심으로 되어있어 학습 동기를 억압했고 결국 소수의 승자와 다수의 낙오자를 양산해 왔다.”는 뜻이다. 그리고 진로 중심의 교육과정의 성공적인 사례로 미국의 ‘메트 스쿨’을 들었다. 더 쉽게 말하면 한마디로 학생들이 학교를 좋아하지 않으니 학교를 좋아하게 만들든지, 꼭 학교가 아니라도 배움이 일어날 수 있게 하면 충분하다는 말이다.

 

 

자기주도 학습은 학습 민첩성

 

자기주도 학습의 맥락적 의미는 여럿이지만 이종태 교수의 취지를 보면 ‘학습 민첩성(Learning Agility)’에 가깝다. 자기주도 학습이 ‘비판적 사고’를 의미할 수 있지만, ‘진로’와 ‘체험’을 중시하는 교육과정을 선호하기 때문이다. 즉 교실 수업에서 사실적 지식보다는 과학 수업이라면 과학자처럼 생각하는 능력을 길러주고 역사 수업이라면 역사적 사건의 발생 연대를 정리한 목록이 아니라 역사학자처럼 생각할 수 있는 탐구학습 능력을 키워준다고 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학습 민첩성(Learning Agility)은 ‘경험을 통해 지속적이고 빠르게 학습하려는 의지와 그에 따른 능력’이다. 이는 학습자가 처음 직면하거나 새롭게 변화하는 상황에서 학습한 것을 빠르게 응용할 수 있는 능력이며, 미래 리더로 성장하는 데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니, 빠르게 배우는 학습자들은 자신의 여러 경험을 유용하게 연결하는 데 능숙하고 필요하지 않은 방식은 버릴 줄도 안다. 특수한 해결책이 필요할 경우 학습하지 않고도 유연하게 대처하며 학습 목표가 확실하며 새로운 경험에 도전하려는 성향이 있다. 즉 학습 민첩성은 단순히 학습 능력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학습 능력을 지속적으로 발전시키며 활용할 수 있는 보다 구체적이고 다양한 능력들이 포함된다.

 

이러한 학습 민첩성의 근거는 경험 중심적으로 기존의 지식과 이론적 방식은 인공지능과 로봇에 의해 대체된다고 보는 데 있다. 즉 이제 지식의 시대가 지나갔고 학습(경험)의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는 사고이다. 그러니, 이제 학생들이 해야 할 일은 기존에 있었던 일들이 아닌 새로운 차원의 일을 경험하는 것이며, 미래 아이들에게 필요한 역량은 지금의 지식과는 매우 다르며 급격하고 역동적인 변화에 맞추어 가는 유연성 있는 능력이다. 그 점에서 교육과정은 자기주도 학습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어야 한다. 이 때문에 두 번째 근거로 들었던 ‘지식 중심의 국가 교육과정’은 쓸모없으며 안 그래도 근대 이후에 다수가 낙오되는 과정을 반복해 왔는데 새로운 국가 교육과정이 지식 중심으로 이루어진다면 상위와 더욱 격차를 벌리게 된다는 맥락이다. 즉 이종태 교수의 국가 교육과정 폐지에 대한 맥락은 근대가 태동되었을 때의 과거를 근거로 들고 있지만 다가오는 미래 사회의 변화를 말하며 이에 대응하는 국가 교육과정이 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진로나 취업 욕망의 최상단에는 인정 욕망이 있다

 

하지만 이런 맥락은 국가 교육과정을 폐지하거나 진로 중심으로 재편하자는 주장을 받아들이기에는 매우 의심스럽다. 이런 이유로 국가 교육 과정을 폐지하자고 하면 여러 한국의 교육 문제를 드러낼 때는 호응을 얻을 수 있지만, 실효적인 대안이라고 할 수 없다.

 

우선 학습에서 자기주도 학습을 위한 동기가 유발되지 않는 원인을 진로나 취업에 부적합한 교육과정 탓이라고만 확신할 수 없다. 학교는 진로나 취업을 위한 도구이지만 그로서만 기능하지는 않는다. 학교는 도구적 지식 이외에 보편적 가치를 전수하는 중요한 통로이다. 이는 진로나 취업을 위한 실용 지식이 불필요하다는 말이 아니라 학생들이 진로나 취업에 고민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지위와 부에 대한 욕망이고 이는 한편으로는 자연스럽고 이를 통해 얻으려는 고차원적인 사회적 욕망으로 ‘인정 욕망’이 최상위에 있기에 그에 국한할 수 없다는 뜻이다. 그런데 진로나 취업을 중심으로 개편한다고 해서 학생들의 이러한 욕망을 해결할 수 있을 까? 다시 말하면 이 근거가 국가 교육과정을 폐지해야 할 근거가 될 수 있냐는 것이다. 물론 학습 동기는 교육과정을 개정할 때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 교사가 수업에서 혁신적인 교수법으로 열정적으로 가르쳐도 학생들에게 새롭거나, 관심이 있거나, 긍정적인 감정과 정서가 묻어나거나, 보상이 주어질 때만 학습이 이루어진다. 따라서 교사는 학생들이 수업에 몰입하도록 하려면 단순한 흥미보다는 눈앞의 걱정거리 등 어떤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지식을 가르쳐야 한다. 이 점에서 학생들이 진로와 취업이라는 문제에 직면해 있는데 국가 교육과정을 없애거나 진로 중심으로 개정하면 학습효과를 높일 수도 있다.

 

 

2015 개정 교육과정은 진로나 취업을 지원하는 국가 교육과정

 

하지만 지금의 2015 개정 교육과정은 진로나 취업을 반영하지 않는 교육과정이 아니다. 그래서 이종태 교수의 주장처럼 학생들이 학습 동기를 갖지 않는 것이 아니다. 2015 국가 수준 교육과정에서 중학교 교육과정은 진로 탐색 활동을 지원하고 자유학기제의 정착 및 확산을 위해 편성하고 운영하도록 했으며, 고등학교는 학생들의 진로와 전공을 고려하여 과목 선택권을 늘렸다. 교과서는 이러한 준칙을 받아들여 국정, 검정, 인정을 가리지 않고 기초적 소양을 학습하고, 학생 개개인의 꿈과 끼를 키워주는 맞춤형 수업이 이루어지도록 개발되었고, 교육내용도 초·중·고를 관통하여 교과의 전체적인 구조를 보여줄 수 있도록 핵심 개념과 이를 뒷받침하는 지식, 기능, 태도를 배치하였다. 이로 보듯이 교과서에는 잠재력을 높이는 지식이 모두 들어있기 때문에 단순하지 않고 꼭 배워야 할 지식이며 이에 대한 학습만으로도 ‘지성’, ‘감성’, ‘시민성’, ‘신체적 활동성’을 모두 높일 수 있다. 다시 말하면 지금 이종태 교수가 지적하는 국가 교육과정이 진로나 취업을 고려하지 않아 학습 동기를 끌어내지 못한다는 지적은 사실과 다르다.

 

 

국가 교육과정을 없앤다고 학벌 사회의 병폐가 사라지지 않아

 

이종태 교수의 주장처럼 국가 교육과정을 없앤다고 해서 자기주도 학습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이 문제는 국가 교육과정이 아닌 사회 전반적인 제도와 문화, 일상적인 삶 등 여러 측면을 고려하여 해결되어야 할 문제라고 본다. 이를테면 과거나 지금이나 우리나라에서 학벌 사회의 영향력에 큰 변화가 없고, 진학이나 진로에 대한 욕망이 크게 부도덕하다고도 볼 수 없는데 이런 원리주의적 접근이 얼마나 성과를 낼지는 회의적이다. 다수의 국민은 지금도 교육의 본원적 역할이나 새로운 학력관은 중요하지 않고 누구의 가방끈이 길고 화려한지만 비교한다. 그래서 대학의 순위를 무지개 색깔 외우듯이 《서-연-고-서-성-한-중-경-시》라고 공식화하고 자사고나 특목고를 선호한다. 젖 먹던 힘까지 노력해도 SKY에 입학하는 학생들은 고작 1만 명을 약간 상회하거나 수능점수 만점자가 그 수준을 넘어서면 누군가는 만점을 받고도 탈락할 수 있는데도 그 욕망을 버리지 않는다. 이런 냉엄한 현실이 시시각각 국민의 삶에 있는데도 단지 국가 교육과정을 없애면 학벌 사회의 병폐를 없애겠다는 태도는 비현실적이다. 그보다는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임금 격차 축소’, 대학 입시에서 저소득층 학생을 위한 ‘고른기회 전형 비율의 확대’ 등에서 그 해법을 찾고, 궁극적으로는 ‘대학 평준화’의 길을 모색하는데 더 많은 힘을 기울여야 한다.

 

 

국가 교육과정의 문제를 지식 탓으로 돌리게 되면 허수아비 오류

 

더구나 학습과학 측면에서 보면 “지식을 경시하고 체험 중심의 국가 교육과정이 되어야 한다.”라는 주장에 대해 수긍하기 어렵다. 체험은 절차적 지식의 습득과정이자 결과이다. 그런데 지식을 얻기 위해서는 지식이 필요하다는 절차는 인지 심리학 분야에서 공인된 사실이다. 학습자가 언제나 스스로 찾아 배울 수 있지는 않다. 사실 그런 학습자는 이미 사실적 지식이 어느 정도 기억한 상태라고 봐야 한다. 그런데도 사실적 지식을 희생시키면서 학습의 과정을 진행하면 실제로는 학생들의 학습을 방해할 뿐이다. 이종태 교수의 의견처럼 “인터넷 덕분에 지식을 배울 폭이 넓어졌고, 인공지능이 그 기회를 더욱 배가시킬 수 있다.” 하지만 그 정보를 이용하려면 즉, 지식을 습득하고 지식을 확충하려면 먼저 지식 창고를 소유하고 있어야 한다. 이 때문에 학생들에게 취업이나 진학과 관련된 교육과정만 있으면 스스로 발견하거나 탐구할 수 있다고 본다면 이는 하나의 필요조건을 충분조건으로 이해하는 일이다. 더구나 학생들에게 학습 동기가 유발되지 않는 원인은 2015 개정 국가 교육과정이 지식 중심이라서가 아니라 사회·구조적인 측면에 있는데도 국가 교육과정 탓으로 돌리는 허수아비 오류이지 않는가에 대해 몹시 의심한다. 학생들이 진로나 취업에 연계되지 않아서만 학습 동기를 갖지 못한 것이 아니다. 학생들은 교육과정에서 다루는 교과의 핵심 개념에 대해 의미를 따져 볼 수 있을 정도로 충분한 지식을 갖고 있지 않아 효율적인 방식보다는 이것저것을 가리지 않고 모두 활용하여 작업하기 때문에, 즉 장기 기억에 지식이 저장되지 않아 인지 과부하에 걸려있는 경우가 훨씬 많기에 학습 동기를 갖지 못하기도 한다.

 

 

자기 주도성을 위해서라도 교육과정에서 지식을 중시해야

 

자기 주도성과 관련된 학습 민첩성도 마찬가지이다. 이종태 교수의 “자기주도 학습의 맥락이 ‘학습 민첩성을 키우기 위해 학습 민첩성이라는 역량을 학습하라는 의미’는 아니다.”라고 본다. 이는 결국 메타 인지를 높이자는 뜻인데 사실적 지식 또는 개념적 지식에 대한 학습을 부정적으로 보는 태도를 더욱 이해할 수 없다. 학습 민첩성을 갖게 하려면 사실적 지식에 대한 학습은 필수적이다. 메타 인지는 뇌의 메커니즘에서 전두엽이 관여하고 앎과 무지는 질문에 대한 대답을 단서 없이 끄집어내는 회상(recall)과 질문에 대해 여러 대답이 주어졌을 때 정답을 찾아내는 재인(recognition)을 통해 구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즉 메타 인지를 높이려면 메타 인지적 조절인 ‘학습에 대해 계획, 점검, 평가하는 활동’을 반복해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사실적 지식은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이를테면 학습자가 사전지식의 부족으로 의사결정에 어려움을 겪는데도 지식의 양을 늘리지 않고 회상이나 재인만을 반복하면 학습의 성취도는 나아지지 않기 때문에 목표와 현재 성과 간의 차이를 줄일 수 없다. 다시 말하면 사실적 지식이든, 절차적 지식이든 지식의 양이 절대적으로 부족할 때 이를 학습하지 않고는 메타 인지적 사고를 높이는 학습 방법은 없다.

 

 

메트 스쿨과 정 반대의 길을 간 리치 아카데미

 

체험이나 경험 중심의 교육과정의 성공사례로 미국의 메트 스쿨을 들지만 반례도 많다. 지식의 근간은 사실적 지식 그리고 이를 확장한 개념적 지식이며 이를 기억하는 교수학습은 AI를 고도화해도 대체될 수 없다. 이를테면 2020년 1월에 EBS에서 방송한 《다시 학교》의 2부인 ‘교사의 고백’ 편은 혁신의 의지와 실제적인 결과의 차이를 그대로 보여준다. 미국 실리콘 벨리에 있는 ‘ALT 스쿨’은 페이스 북 창립자인 마크 주커버그가 투자하고 구글 엔지니어 출신이 만든 학교이다. 학교의 교육과정은 주로 선택형이며 학생의 등하교시간도 자율에 맡겼으며 교사가 직접 강의하지 않는 ‘플립러닝’의 방식으로 했고 경험 중심의 첨단교육을 했다. 학업 성과는 참담했다. 학력 저하는 심각했으며, 심지어 학습장애에까지 이르게 된 학생도 나왔다. 이후 ALT 스쿨 9개 중에서 5개는 폐교되었고, 4개는 다른 학교에 흡수되었다. 이 비극은 교육청이 우리에게 미래 교육이라고 권장하던 “교사는 학생들에게 사실적 지식을 기억하기보다는 인터넷을 통해 검색하도록 하고 이를 자신의 삶에 적용할 수 있도록 활동 중심으로 교수·학습해야 한다”라는 학력관이 얼마나 위험하고 허구적일 수 있느냐를 생생하게 보여준다. 영국의 리치 아카데미는 사실적 지식 위주의 교육을 하였지만 메트 스쿨의 성공만큼이나 뛰어난 성과를 냈다. 교사의 지식 강의를 토대로 초등학교 2학년과 6학년 학생들은 배워야 할 지식을 배우고 있었다. 우리에게는 혁신을 거스른다는 ‘지식 위주의 학습’이나 ‘교사의 강의식 수업’은 그들에게 최적의 교수학습이었고 학생들의 학력은 전이 능력을 포함해 상승하였다. 더 눈여겨봐야 할 점은 리치 아카데미가 사회적으로 중하위층들이 주로 사는 쇠락한 공장 지역에 있는 데도 오히려 상류층들이 다니는 학교 못지않게 지식 학력을 높이면서 학력 격차를 줄였다는 사실이다.

 

 

교육제도는 그 나라 전체 시스템에서 결정될 때 취지를 살릴 수 있어

 

내 말은 국가 교육과정을 폐지해야만 이종태 교수의 의도를 살리거나 체험이나 진로 중심이어야만 학습 동기가 일어나는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그것이 한 요소가 될 수 있지만, 부분적 사례를 보고 국가 교육과정의 폐지를 말하기에는 성급하지 않았나 생각한다. 과거 교육정책이나 교육이 아닌 다른 사회 영역을 돌아보더라도 “강남 갔던 제비가 한 마리 돌아오면 봄이다.”라는 정책을 써서 실패한 경우는 너무 많다. 봄이 왔다고 할 수 없는데도 봄이라고 착각하면 제비나 봄이 아니라 ‘봄이 왔다고 믿고 봄옷을 입게 된 사람들이 질병에 걸린다는 사실’이다. 더구나 교육 권력이 개입하여 정책과 제도로 만들어 버리면 실제로 피해를 입게 되는 당사자는 만든 주체가 아니라 그로 인해 교육과정을 따라야만 하는 국민과 아이들이다.

 

우리나라 교육에서 이종태 교수의 지적처럼 입시 위주의 교육을 가장 큰 병폐로 여기고 있고 이를 개혁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높다. 공교육을 몰락시키고 학교를 서열화하고 실제의 학습이 이루어지지 못하게 하는 주범이라고 본다. 이와 관련해 상대평가를 없애고 모든 과목을 절대평가로 바꿔야 한다는 대안을 내놓기도 한다. 하지만 내 물음은 이런 것이다. “이 모든 병폐들을 개선하여 완벽한 제도를 만들었다고 해도 우리가 원하는 교육이 이 땅에서 실현될 수 있느냐이다.” 과연 우리 교육의 문제는 불완전한 ‘제도’ 혹은 ‘정책’의 문제라고 할 수 없다. 무엇보다도 어떤 나라에서 효과를 얻은 교육제도라고 해도 우리나라에서 똑같이 작동될 것이라는 보장은 없다. 오히려 우리나라에 적용하려다 기존의 제도가 수정되어 제 역할을 못하게 되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외국에서 들여온 새로운 정책이 추진되어도 자국에서는 기존 관행에 의존하려는 경향이 강해 혼란을 가중시킬 수 있다. 이미 지난 몇 년 동안 교육청이 주도한 ‘새로운 학력’에서 확실하게 경험하고 있다. 그리고 애초에 교육제도는 그 나라의 전체적인 시스템에서 작동되는 것이기 때문에 제도만 도려내어 옮겨 온다는 자체가 무리라고 봐야 한다. 하물며 국가 교육과정에 대한 폐지는 매우 성급하다. 우리는 지난 몇 년간 핀란드를 모범적인 사례로 들면서 역량 중심 교육과정을 운영하려고 했던 폐해가 학교에 어떤 문제를 일으켰으며 지금 학교가 학력 저하에 시달리는 현실을 목격하고 있다. 핀란드가 이러저러한 교육법이 좋으니 또는 어떤 나라에 국가 교육과정이 없으니 즉시 우리나라에도 새로운 방식을 도입하자가 아니라 학습 원리에 따르면 어떤 교수·학습법이 바람직하고 이를 통해 어떻게 현실의 교육 문제를 해결해 갈 것인가를 더 많이 고민해야 한다. 지금 한국 교육이 겪고 있는 여러 문제가 제도적이고 정책적인 이유뿐 아니라 우리나라 교육철학의 근간이 되는 사회적, 문화적 바탕에 두고 있다는 사실을 가볍게 여기는 문제의식은 바람직하지 않다.

 

 

실제의 학습이 이루어지도록 국가 교육과정이 개정되어야

 

이 점에서 자기주도 학습을 하지 못하고 있으니 진로나 취업 중심의 교육과정으로 개편하거나 2015 개정 교육과정을 지식 중심의 교육과정이라고 보게 되면 현실적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학교는 교수학습이 잘 이루어지게 하고 진로나 취업의 문제는 서열화된 대학체제를 완화하면서 공정성을 고려하는 공론화 작업을 통해 이루어져야 한다. 지금 이런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국가교육회의를 만든 지가 몇 해가 되었는데 국가교육위원회로는 아직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국가마다 각기 다른 교육철학, 제도, 프로그램, 교사와 부모의 모습이 있는데 이 교육의 차이는 그 나라가 처한 정치적, 사회적 환경 하에서 최고의 교육이란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 끝에 나온 것이다. 그런데 국민의 어느 정도 합의나, 대학체제의 개편 등 선결과제에 대해 일정한 진척도 없으면서 “국가 교육과정을 폐지하자”라는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 오히려 지난 2015년부터 진보 교육청이 주도적으로 역량 교육을 하겠다고 하면서 지역 교육과정으로 새로운 학력을 재구성하고 지침으로 운영하려던 실패를 그대로 반복할 뿐이다. 심지어 지난 수년 간 기초학력에 대해서는 말도 꺼내지 못할 정도로 적대시했던 교육청들이 이제 기초학력 문제가 심각하다고 여러 지침을 만들고 내려보내는 현실에서 우리는 제도나 정책이 현실을 무시하고 강행되었을 때 그 피해는 오직 사회적 빈자(貧者)에게 돌아가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국가 교육 과정을 유지하자, 폐지하자’가 2022 국가 교육과정에 대한 논의에서 중심 과제가 되는 일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 요컨대 내 말은 이종태 교수가 지적한 여러 문제에 대해 학습의 입장에서 보면 국가 교육과정이 있어서 획일적인 교육을 할 수밖에 없는 것이 아니다. 학교에서 피부로 느끼는 모습은 실제의 학습이 이루어지지 않게 하는 교수·학습방식에 더 큰 문제가 있다.


<출처> 전주완산고등학교 교사  박제원 

https://21erick.org/column/54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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