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오후가 되어도 나는 일어나지 못하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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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일 | 2023-11-08 10:32:47 | 조회수 | 1399 |
내용 |
김성규
오후가 되어도 나는 일어나지 못하고 이불 속에서 뒤척인다 눈을 감고 아무것도 먹고 싶지 않은 날 어둠이 다가와 나를 흔들 때까지 씻지 않은 밥그릇과 썩어가는 음식물이 잔뜩 쌓인 냄새나는 방에 전화벨이 울린다 귀신처럼 나를 부르는 사람들 아무것도 하지 않고 다만, 흐느낄 수 있는 기쁨을 주신 밤이여 가라앉는 유리창이여 나를 바라보라 오후가 되어도 일어나지 않는 나를, 오오 누가 나에게 밤을 선물하셨나 썩은 내 꾸역꾸역 피어오르는 방에서 어둠에 질질 끌려다니는 영혼으로 하여금 공책에 이런 시나 쓸 수 있도록 지친 것이다. 시 속 ‘나’는 지금 앓고 있는 것이다. 늦은 오후 가까스로 깨어 이불 속을 허우적거리다 다시금 밤을 맞을 때까지. 무슨 내막인지는 몰라도 사람들이, 사람들에게서 온 전화가 ‘나’에게는 “귀신처럼” 느껴지는 모양이다. 그럴 때가 있다. 사람에게서 한없이 멀어지고 싶을 때, 모두 버리고 도망치고 싶을 때가. 나 자신에게서조차. 그럴수록 나는 점점 더 “씻지 않은 밥그릇과 썩어가는 음식물”처럼 서글퍼지겠지만. 박소란 시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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